알랭 드 보통 - 영혼의 미술관

Book

(두서없는 아무말 주의 부탁드립니다)

한 편의 큐레이션을 본 느낌이다. Art as Therapy 라는 원제에서 굳이 ‘미술관’이라는 단어를 뽑아낸 이유가 있었구나.

역시 보통의 책 아니랄까봐, 사랑과 인간세상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를 열었다. 미술은 인간에게 부족한 기억력을 뒷받침할 수 있으며, 현실의 힘듦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슬픔이란 감정을 곱씹지만 희망의 여지 또한 일깨워주게 하는 기록 매체라고 소개한다. 또한 미술은 우리에게 인내심, 호기심, 회복력 등을 알려주어 사랑꾼으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자연물을 보면서 과거의 경험이 아닌 현재의 경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미술가의 업이라고 소개한다. 어떤 돈씀씀이가 예술적인 돈씀씀이인지 지적하며 진보한 자본주의와 예술가라는 직업의 현상태를 다룬다. 그리고 더 넘어가 국가적 예술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적절한 도시설계와 검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나의 인격체에서 두명의 관계, 주변 환경을 지나가며 국가와 세계로 스코프를 넓혀나가는 보통의 큐레이션은 깔끔했고 새로웠다. ‘미술’과 ‘정치’를 연관지어 생각하려는 노력은 해본 적이 없었으나 이 참에 시야가 넓어질 수 있어서 뿌듯했다.

그렇지만 100% 공감할 수는 없는 내용들이 있었다.

일상적인 나날의 기록으로서의 예술보다는 흥미와 감탄을 유발하는 흥분제로서의 예술을 더 선호하는 나는 소소한 인간사의 방법론적인 해석이 ‘이런 시각도 있구나’ 라는 접근으로만 다가왔지, 정답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밤하늘 자체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빛을 팔레트에 담아내고 역동성을 붓터치에 흘려보내는 기술에 집중해서 읽었다. 나에게 미술은 ‘무엇을 담아냈는가’ 보다는 ‘어떻게 특별하게 표현했는가’에 집중된 분야였다. 하나의 학문이자 재능잔치로 여겨졌다.

‘사랑’이 아닌 ‘감탄’에 집중하는 나에게 떨림을 주었던 미술 작품과 작가가 몇 있다. 중학교 때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을 보았던 기억이 생경하다. 해석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감정은 무엇이었는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단테의 신곡을 읽고, 여러 미술가들이 접근한 신곡 삽화를 찾아보고, 보티첼리의 지옥도 나 르네상스 중심의 신화(神畫)를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오페라의 첫 다운비트를 듣는 느낌. 웅장했다. 가장 최근에는 살바도르 달리의 예술세계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상상력과 정교한 표현력, 모든 디테일에 궁금함을 가지게 되는 작품들에 감동했다.

진정으로 뛰어난 비평가는 우리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왜 개인적으로 그렇게 공명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아주 이상한 사실을 진지하게 여긴다. 바로, 우리는 자신이 왜 어떤 것을 사랑하거나 미워하는지 자동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원문으로 돌아와서, 보통이 비평가의 목적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그러게, 정말이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지만 그 파도가 어떤 원인으로 일게 된 것인지 알아내기가 어렵다. 나만의 큐레이션에 대한 비평가가 간지러운 곳을 긁어줬으면 싶다.

21세기의 메디치 가문은 음악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다 느껴진다. 가장 소비하기 쉽고 접근성이 좋은 예술분야라서인지, 이 시대의 ‘예술인’이라 하면 십중팔구 가수를 떠올릴 것이다. 3대 기획사-라는 패트론들이 열심히 음반을 찍어내고 있다. 아이돌 문화라는 시각적인 정체성이 들어가 음악성 자체의 중요함이 희석되는 느낌이지만, 이 또한 21세기의 특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미술도 대중성을 더 찾았으면 좋겠다. 최근 들어 웹툰 업계가 성황하기 시작했다. 2006년 [마음의 소리] 1화를 찾아 읽었던 나에게는 반가운 문화적 성장이긴 하지만, 대형 패트론들이 웹툰 작가를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상업적 성향을 띄는 것이 또 달갑지만은 않더라. ‘내’가 바라는 미술적 지향점과 ‘사회’나 ‘경제’가 원하는 예술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 아쉽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것도 하나의 과도기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옳겠다. 갑자기 커지는 문화는 어느 정도 정착하고 방향성을 잡는 데에 시간이 걸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