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변한 내 인생 - 이재범 : 나는 왜 서평 쓰기를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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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다. 책을 읽고 스스로 정리하고 되새김질하기 위한 글이다.


책읽기를 싫어했던 적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와 같이 동네 어린이 도서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매 달 30권의 책을 빌려 읽고, 좋았다-별로였다-싫었다 를 공책에 기록한 다음에야 그 다음 달의 책을 빌리러 갔었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영화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전 14권의 장편이다!)를 패기있게 도전했다가 그 방대한 세계관에 지쳐버린 기억도 있고, 인체 관련 그림책에 누군가 중요 부위에만 공주 스티커를 붙여둔 걸 걸 본 기억도 있다(공주님의 눈은 소중하니까요!).

그러나, 독서기록장 쓰는 건 또 한없이 싫어했다. 학교 방학숙제와 연관지어버려서인지도 모른다. 개학 3일 전부터 하루에 독후감 10개씩을 찍어내야 했던 게 트라우마가 되어서일까. 책 읽는 것은 내 자유인데 이걸 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반항으로 표출됐던 것 같다. 글 쓰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일수도 있다.

음, 아니다. 내가 서평을 써버릇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잘 읽었는가” 에 대해 타인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나는 어릴 적부터 독서 속도가 빠른 편이었다. 거의 하루에 한 권씩을 읽는 훈련이 되어서 그런가, 웬만한 문학은 빠르게 씹어삼킨다. 비문학도 내가 흥미가 있는 분야라면 후루룩 넘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속독을 통해 큰 틀 이해하기는 잘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생각하는 자잘한 디테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독서 경진대회에서 마지막 라운드까지 진출했다가, 책을 읽고 나서 ‘A’ 캐릭터에 대해 느낀점을 공유하라는 문제에서 좌절했다. ‘A’는 책의 줄거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작은 등장인물었기에, 아무런 생각도, 감정의 동화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큰 틀만 좇다가 졸지에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독후감 에서 감(感)을 빼게 되었다. 서평에서 평(評)을 내버리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보다는 책에 어떤 지식이 담겨져 있고, 어떤 설정 디테일이 있었는지 정리를 하게 되었다. 내가 X 를 X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Y로 받아들이게 되면,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건가 걱정됐다. 줄거리를 훑으며 지나치고 넘어간 작은 포인트들이 부끄러웠다. 내 의견이 ‘대중적인’ 의견이 아닐 때 그걸 변론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인용구도 많이 넣었다. 내가 그 단락, 페이지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읽었다는 증거니까.

[책으로 변한 내 인생] 의 작가는 독후감, 즉 리뷰를 쓰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서평을 보면 인용문을 쓰지 않는 리뷰가 대부분이다. 나는 인용문을 써야만 내가 이 책을 읽었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타인에게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다.

리뷰 쓰기는 남에게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남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말이 아닌 글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상대방이 “그 책 어때?”라고 물으면 누구나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듯이 가볍게 쓰면 된다.

나에게 있어서 리뷰는 “그 책 어때?” 보다는 “그 책에 대해서 설명해줘” 였다. 리뷰가 아닌 ‘족보’를 만들고 있었다. 서평을 쓴다면서 책을 평가하기보다는 책을 설명하고 있었다. 리뷰 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보여주기식 글쓰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물론, 내가 다음에 어떤 책을 기억하기 위해서 요약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중요한 인용구들은 박제를 해 둘 것이다. 그것이 나의 리뷰 형식임을 인정한다. 그것이 꼭 나쁘고, 잘못된 방식이라고 폄하하지도 않을 것이다. 동시에 감정을 배제하고 책을 평가하는 행위에 제동을 걸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내 의견을 말하는 언변이 부족하고 어휘력이 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글을 써 나가면서, 책을 더 많이 읽으면서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리뷰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책을 읽었다는 뜻이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떤 것이 기억에 남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박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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